열린마당

간호문학 공모전 수상작

꽃 같은 그대들을 떠나보내며

가작 수필
노경빈 | 부산 남구보건소

“간호사님 지금 어디세요? 우암동에 나오셨나요?”
“아뇨, 아직이요!”
“새끼 제비 4마리가 집 앞에 떨어졌어요! 어떡해요?”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려는데 방문건강관리실 방문 대상자 김OO 할머니의 흥분된 전화 목소리가 스피커를 켠 듯 크게 울린다. “잠시만요. 바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남구청 업무 담당 주무관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떨어진 새의 위치를 알렸다. 할머니께도 남구청 담당자분께서 떨어진 새끼 제비는 안전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옆에서 대화 내용을 들으신 팀장님께서 이 상황이 신기한 듯한 표정으로 동네 그런 일도 보느냐고 물어보신다. 그렇다. 나는 남구보건소 우암동 방문간호사로 지역 주민의 건강관리를 하는 역할을 하지만, 방문간호를 하면서 만나는 동네 분들의 우편물 내용 읽어드리기, TV 고장 신고 대신해 드리기, 무인 현금인출기에서 입출금 도움 드리기 등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고령의 분들에겐 높은 벽일 수 있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 수 없다.

초창기 방문간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박미루(가명)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집 뒤뜰로 가시며 집 뒤 산비탈이 당신 집을 덮을 판이라고 걱정을 털어놓으셨다. 나는 처음에 간호사로 건강상담의 주 업무만을 생각했을 뿐이며 그건 내 소관이 아님에 망설였던가. 하지만 보건소에서 나온 건강상담 간호사임을 아시면서도 공무 업무하는 사람으로 업무의 분담은 없다고 보셨는지 도움 요청이 진지하셨다. 무엇보다 집 높이만큼 깎아지른 언덕에 임시방편으로 덮어놓은 거적때기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한숨과 함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근심을 듣고 더는 외면할 수 없어서 ‘안전 신문고’에 접수해 드렸다. 며칠 후 산림청에서 안전하게 처리해 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할아버지에게 전해드렸다. 산림청에서의 보수공사는 할아버지 댁의 안전만을 생각한 것이었는데 할아버지와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상상 이상의 공사에 두고두고 고맙다는 할아버지의 인사를 들었었다. 나 어릴 적 흙먼지 날리는 함양(지명) 진고개 신작로 길에 가로수 나무로 서 있던 미루나무의 변함없음을 연상케 하던 우암동 장고개 산자락 언덕의 숲과 함께 동거하듯 사시던 할아버지는 지금은 넘어질 걱정 없는 집에서 편안하신가요?

늦가을과 겨울 사이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질 때 즈음이면 떠나가신 대상자분들이 생각이 난다.

빨래 널다 옥상에서 떨어져서 고관절 골절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불편한 걸음걸이, 그 당시 파손된 치아 때문에 깨진 이 사이로 말보다 바람 소리가 앞서 나와 발음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꽃분(가명)님 대상자에겐, ‘65세 이하 치아 지원 서비스’가 가능한 남구 소재(현재는 부산진구로 이전)의 치과병원을 연결해 드렸다. 비록 틀니(의치)지만 고른 치아를 가지게 되어 만족해하셨고, 늘 인연에 고마워하시던 백합꽃 같은 하얀 마음을 가지신 그분은 그곳에서 편안한 걸음으로 건강 걱정 없이 맛난 것 드시고 잘 계시는가요?

2평 남짓한 거주지에 누우면 딱 맞는 방에 기대어 앉은 곳은 머릿기름으로 벽지가 황톳빛으로 바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거주지 벽지와 장판이 낡은 곳에 사시던 강소금(가명) 할아버지. 집이 너무 낡아 ‘(사)희망의 러브하우스’에 집수리 지원을 요청해 드렸다. 공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다 막걸리 한잔 기울이시며 내밀던 바나나우유의 달달한 맛은 아직도 입안에 맴도는 듯 잊히지 않는다. 낡은 리어카에 가득 폐지를 모아 번 수입금과 술, 담배, 부식 구입비 등의 지출을 낡고 오래된, 아마도 폐지 속에서 가져온 듯한 공책에 줄을 그어 수입 지출 내역을 꼼꼼히 적고 그날의 일과를 간략하게 메모하시던, 고요한 우물에 맴도는 소금쟁이 같았던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컬컬한 탁주 한 사발로 시름없이 밝게 지내시는지요?

요즘은 먹을거리가 문제가 아닌 제대로 된 건강식의 문제인듯함을 간경화 대상자분을 보면서 알았었고 컵라면, 컵밥, 일회용 커피, 일회용 국거리 등 집 안 구석구석 쌓여있는 간편 음식들, 조절되지 않은 혈압 당뇨 수치와 간경화로 복수가 차서 만삭의 임산부 마냥 배를 받치고 뒤뚱이듯 걸으시던 걸음걸이, 짙어가는 병색으로 노랗게 개나리 꽃빛의 피부를 닮아가던 최운영(가명)님은 넘어져 골절 우려가 높아 지팡이 사용을 권유해 드렸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젊다고 한사코 지팡이 사용을 거부하시더니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웠는지 지팡이 지원을 원하셨다. ‘보건소 지원 지팡이’를 챙겨드렸는데 그나마도 건강이 더 악화되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시고 세워두신 지팡이에 외로움만 절절히 묻어두고 떠나셨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저 혼자 피어나는 자운영 꽃을 닮으신 할아버지. 그곳에선 편안한 걸음으로 거칠 것 없이 잘 걸어 다니시는지요?

본인의 뜻과 무관한 집안끼리의 결혼을 하게 되는 게 싫어서 섬에서 가출하여 뭍으로 나오셨다는 황아리(가명)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신발장의 굽 높은 구두와 옷걸이의 화사한 의상들, 평생 병원 한번 가본 적 없다며 의료보험료는 몇 년 치가 체납되어 있고 까맣게 가지색으로 물들어가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똘망똘망한 눈빛, 비정상적인 복부팽만, 건강에 적신호가 왔음을 아시면서도 병원 진료비 걱정으로 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살아온 시간들을 한스러워하시며 수시로 술을 드셨다. 한밤 중 술 취한 목소리로 “넘어져 다쳤다. 피가 나고 무섭다.”며 늦은 밤 전화가 걸려왔다. 119 이용을 권유 드렸으나 “난 그런 거 할 줄 모른다. 도움 줄 사람도 없고..” 하시어 119를 부르고, 대상자 댁 주소를 알려 드리고, 늦은 밤 남편의 운전으로 신호도 무시하고 달렸던 시간들. 응급실에 보호자가 있어야된다고 하여 응급실에서 꼬박 지샌 시간들이 몇 번이었던가. 진료의사의 약을 잘 드시다가도 수시로 약물 복용을 거부하시고 주변 분들의 어설픈 의료 지식을 듣고는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하시며 깡으로 버티시더니 기어이 스스로 몸도 가눌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병원에 짧은 기간 머물다 가신, 들녘에 저 홀로 핀 아이리스 꽃을 닮으신 그 분. 거기서는 울지 않으시고 밝고 예쁘게 아름답게 사시고 계시는가요?

안전보호장비를 무시한 오랜 건설 현장에의 일로 피폐해져가는 몸 안의 변화를 등한시한 결과일까. 첫 만남 때부터 호흡이 힘들어 일상의 움직임도 버거워하셨던 조양지(가명)님. 호흡기 장애 등급 판정이 가능한 대상자라 판단되어 동사무소로 병원으로 은행으로 조금 더 많은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 시간들이었다. 서류 준비 등으로 복잡한 절차를 수행할 때마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오래 살지도 못할 것인데, 하지 마소.”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며 도움의 손길에 기운 빼게도 했었고, 건강 상태에 따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여 계획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었다. 다행히 호흡기 장애 등급이 나오고 장애인 활동 도우미 서비스를 받아 식사 수발이며 일상생활 활동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또 부산광역시 남구 장애인 협회의 사례 대상자로 선정되어 주거지 환경 개선과 고장 난 냉장고를 지원받았을 때 얼핏얼핏 내비치던 양지꽃을 닮은 어설픈 미소. 고마움의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 슬며시 고개 돌리시던 표정들이 아직도 선하다. 그곳에서는 편하게 숨 쉼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고 계시는가요?

“죽고 싶다, 왜 자주 안 오는 거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가면 딱 맞는 좁고 그늘진 골목길의 1평 남짓한 다락방 구조의 주거지에 소복이 쌓인 고철 덩어리와 동거하시던 송진해(가명)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동 수단인 자전거만이 유일하게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깔끔했었다. 구멍 난 자전거 바퀴를 손수 땜질하셨고 자전거를 분해하여 부품을 닦고, 기름칠하고, 다시 조립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전거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자주 와 달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려 방문 일정이 아니어도, 목적지에서 조금 둘러 가더라도, 할아버지 집 앞을 지나면서 대문 한번 두드리고 자주 안부 묻고 가곤 했었다. 습관처럼 말씀하시던 죽고 싶다가 현실이 되어 다가왔을 때의 슬픔이란. 벚꽃잎 날리듯 하얗게 하얗게 봄꽃처럼 가셨으니 그곳에서는 상처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시는가요?

병원에서 근무할 때, 환자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올라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병원 업무를 떠나면 타인으로 인한 죽음의 슬픔은 더 이상 나와 무관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건소 근무를 하면서 또다시 가까이 대하던 분들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독거사 발견으로 경찰서 조사를 받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터졌었다. 조사관은 간호사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그렇게 가실 수밖에 없는 분이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셨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를 스쳐간 분들과 못다 한 인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글을 통해 나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치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처럼 다가온 나의 현재 직장, 워낙 고령층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또 언제 다시 이별을 할지 모르는 대상자분들을 보면서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최선의 지역 간호사의 모습으로 대상자분들의 기억에 남고 싶은 소망을 가진다.